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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스햄튼FC 소식/개인의견

내가 비인기팀 사우스햄튼의 팬이 된 이유

by 윤인츠 2023. 10. 3.

나는 왜 사우스햄튼 팬이 되었을까..? 솔직히 이런 생각을 하다 보면 나 조차도 내가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돈도 많고 성적도 좋은 빅6나 레바뮌 등의 팬이 되지 않고 왜 매번 기록적인 패배, 애정만 생기려고 하면 떠나는 선수들, 구단의 실책 투성이인 이 팀의 팬이 되었을까..? 

 

우선 나는 축구를 본지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내가 중고등학교를 다녔을 때 박지성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로 이적했고 국내에 수많은 맨유팬들이 생겼다. 아스날, 리버풀, 첼시 등의 빅클럽 팬들도 참 많이 생겼다. 고딩때는 메호대전이 최절정기였기 때문에 같은 반 친구들도 메시냐, 호날두냐 라는 얘기를 많이 했다. 하지만, 나는 축구에 별다른 관심이 없었다. 다들 월드컵만 되면 티비를 틀고 중계를 보느라 난리인데 우리집은 다 나같은 스타일이여서 국대 경기도 챙겨보지 않았다. 내 기억으로는 가족들이 다 함께 국대 경기를 본건 2002년 한일월드컵 당시 첫 월드컵 승리를 했던 경기였던 것 같다. 

 

나는 원체 운동을 싫어했고 축구처럼 활동적이면서도 90분이라는 긴 시간의 경기를 가진 스포츠를 좋아하지 않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스포츠는 피겨 스케이팅이었다. 중학교 2학년때 김연아가 일본에서 열린 세계선수권대회에서 쇼트 세계신기록을 기록했을 때 난 그 경기를 보고 반했다. 그때부터 나는 쭈욱 온갖 피겨 국제 경기를 모두 중계시간에 맞춰서 봤고 경기 룰이나 점프, 스핀 등도 많이 공부했다. 국내 선수들의 경기도 꽤나 많이 챙겨봤다. 나는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는 편이었기 때문에 피겨처럼 잔잔한 음악 기반에 무용이 들어간 스포츠를 좋아했다. 

 

그랬던 내가 변하게 된 것은 2019년이었다. 당시 나는 처음으로 해외생활을 하게 되었다. 중국의 한 대학에서 랩실을 근무하고 있었는데 옆에 있는 랩실 사람이 손흥민 얘기를 꺼냈다. 내가 그때 축구에서 알고 있었던 것은 월드컵에서 조현우가 미친듯이 선방을 했다는 것과 손흥민이 독일 골키퍼가 비어있을 때 달려가 극장골을 넣었다는 것이었다. 손흥민이 토트넘에서 뛴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던게 나였다. 근데 생각보다 중국에서 손흥민의 인기가 굉장히 많았다. 특히 남자애들 사이에서는 거의 신급이었다고나 할까...?

 

중국에서는 별로 친구가 없었기 때문에 나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많았다.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서 찾아보기 시작한게 축구였다. 당시 스포티비에서는 하이라이트 영상을 유튜브에서 업로드해줬기 때문에 나는 몇 개의 경기를 보기 시작했다. 내가 주로 보던건 맨유시절 박지성이 활약한 것이었지만 점차 추천 동영상 때문에 다른 것도 보기 시작했다. 프리미어리그 경기를 챙겨보기 시작한 것은 그 다음해였다. 

 

내가 2019년 연말에 손가락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손가락 수술을 하게 되었다. 뼈가 이상하게 부러지는 바람에 서울아산병원에 가서 수술을 했다. 뼈가 붙는데만 3개월이 걸렸던 나름의 대수술(?)이었다. 의사선생님이 뼈 위치가 너무 이상하게 되어서 핀으로 꼽는 수술이 불가능하면 손가락을 절개해서 뼈를 이어붙이겠다고 할 정도였으니... 아무튼 손가락이 바보가 되다 보니 노트북으로 타자를 치는게 어려웠고, 하필이면 코로나라는 전염병까지 도는 바람에 밖에 나가서 할 것도 없어서 집구석에 있기 일수였다. 

 

그때 시간을 떼울만한게 축구 경기밖에 없었다. 그리고 당시 내가 대학원 생활을 하면서 마음의 상처를 많이 받았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축구 영상을 보면서 우울감을 많이 날리기도 했다. 어쩌면 그것때문에 축구의 매력에 빠진 것 같다. 나는 원래 격하고 싸움박질이 잦은 스포츠를 좋아하지 않지만 축구경기를 보면서 미친듯한 열기와 흥분에 휩싸였다. 그래서 시간을 맞춰 일어나 챔피언스리그나 프리미어리그 경기를 보기 시작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특별히 관심이 가는 팀이 없었기 때문에 토트넘 경기를 주로 봤었다. 

그러다가 사우스햄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그 계기는 이 팀이 생각보다 꽤나 재밌는 축구를 구사했기 때문이다. 당시 "사우스햄튼 돌풍"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리그에서도 성과가 꽤나 괜찮았다. 랄프 하센휘틀을 필두로 해서 프리미어리그 전반기를 날라다녔다. 팀 상황을 보면 중국인 구단주가 짠돌이라 돈이 없었지만 그와중에 똥꼬쇼를 하는 감독을 보니 애잔한 감정이 들었다. 그리고 사실 나는 언더독을 좋아하는 터라 빅클럽 보다는 이런 클럽이 더 마음에 들었다. 

 

축구 스타일도 스타일이었지만 어쩌면 그때 당시 사우스햄튼의 상황이 나와 비슷했기 때문에 더 애정이 갔던 것 같다. 나 역시 나름 괜찮은 삶을 살고 있었지만 대학원 한 번 잘못 갔다가 실패의 경험을 맛봤고, 그 이후 2년, 3년 동안을 미친 우울감과 PTSD에 시달렸다. 사우스햄튼이 잠깐 영광의 시절을 보냈던 적은 있었지만 구단이 버림받고 힘드게 사는 것이 내게 감정이입을 하게 되는 원인이 되었다. 

 

그리고 팀의 주축이라고 할 수 있는 제임스 워드 프라우스의 캐릭터가 참 독특했다. 구단 성골유스면서 프리킥 마스터라니... 완전 만화 주인공 같았다. 하필이면 내가 본격적으로 보기 시작한 시즌부터 미친듯이 프리킥을 득점하기 시작해서 제워프 만큼은 엄청나게 애정이 갔다. 지금은 웨스트햄으로 이적했지만 간간히 제워프를 보기 위해 웨햄 경기를 볼 정도이니.. 

 

빼놓을 수 없는 또 다른 요소는 랄프 하센휘틀이다. 하센휘틀이 경질된 후 허한 마음을 많이 느꼈었다. 그때 나는 이 팀보다는 오히려 하센휘틀이나 제워프의 팬이 아니었나하는 생각도 들었다. 하센휘틀이 경질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을 나는 인지했지만 과연 내가 하센휘틀이 없는 소튼을 지속적으로 응원할 수 있을련지는 의문이었다. 이 감독이 무슨 마법을 부렸길래 이렇게 내 마음을 아프게 했나 싶다. 하센휘틀의 커리어를 보면 하부리그에서 부터 쭈욱 올라온 케이스였고 나름 빅클럽 감독을 맡을 수 있었는데도 소튼에서 머물렀다. 그의 스타일에 대해 말은 많았지만 나에겐 "이게 축구다"라는 것을 보여준 감독이었고, 리버풀 경기가 끝나고 나서 눈물을 글썽이는 것이나 크게 이긴 경기에서 선수들과 손잡고 팬들에게 인사하는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이었다. 

 

그래서 하센휘틀이 경질된 후 나온 디 애슬레틱의 비하인드를 보고서 구단에 정이 많이 떨어졌다. 네이선 존스가 선임된 이후에는 거의 경기를 보지 않을 정도였다. 하지만, 결국 몇 년을 팬질을 하다 보니 하센휘틀은 떠났지만 계속 이 구단을 응원하게 되었다. 이런 하급팀을 빨면서 지나치게 내가 과몰입을 하는게 아니냐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이게 내가 스포츠팀을 응원하는 방식이다. 나는 원래 내가 관심있으면 깊이 파고 드는 성격이기 때문에 단순히 응원만 하는 수준에서 그치지 않는다. 번역글을 하는 것도 순전히 내가 좋아서 하는 것이다. 

 

블로그를 개설하고 인스타그램 계정도 운영하는 것은 내가 좋아서 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여러 구단의 팬 중에서 사우스햄튼을 응원하는 사람들의 매너가 참 좋다고 생각한다. 팬 수가 워낙 적어서 그런지 타 구단 팬들과 싸우는 일도 적고 이 팀을 응원하는데 진심인 사람이다. 언제 정모를 할지는 모르겠지만 그 기회가 있다면 한 번 나가서 보고 싶다. 

 

비록 스포츠 리퍼블릭의 구단 운영에는 불만이 많고, 어쩔때는 구단에 정이 뚝 떨어져 경기를 보고 싶지 않을 때도 있지만 이미 팬이 되어버려서 놓을 수가 없게 되었다. 한때는 내가 이런 팀을 응원하지 말고 맨시티처럼 돈도 많고 축구도 잘하는 팀을 응원했어야 했다며 후회하기도 했고, 다른 팀을 볼까하고 경기를 본적도 있었지만 결국 사우스햄튼을 떠나지 못했다. 아무리 축구를 잘해도 사우스햄튼을 응원할 때처럼 경기가 흥미진진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올해는 사우스햄튼이 참 힘든 해를 보냈다. 팀이 강등당했고, 내가 좋아하던 선수들이 모두 떠났으며, 새로운 감독이 왔다. 챔피언쉽 시즌이 최종적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꾸준히 사우스햄튼을 응원하고 싶다. 그리고 인스타그램 계정을 운영하면서 많은 현지팬들이 한국이란 나라에서 응원하는 나에게 DM도 보내주고 인스타 프로필도 만들어주고 해서 참 고맙다. 

사람이 살면서 한번쯤은 인생이 정말 죽고 싶을정도로 괴로울 때가 있다. 2023년이 딱 나에게 그렇다. 나는 올해 초에 영국 3개의 학교에서 석사 오퍼를 받았다. 이전에 중국에서 한 번 대학원을 실패했기 때문에 나는 이걸 반드시 내 손에 쥐고 싶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이를 시작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 이유는 복합적이지만 결국 내 문제가 가장 컸다. 사우스햄튼이 강등권에 허덕이면서 고생할 때, 나 또한 너무 힘들었다. 합격의 기쁨을 누리는 것도 잠시 희귀질환을 진단받아 산정특례를 등록하게 되었다. 3월에는 내가 가지고 있는 다른 희귀병때문에 잠깐 시술을 했다. 나는 내가 왜 이런 병에 걸리게 된 것인지 현실 부정을 하고 싶었다. 정신적으로 간신히 버티고 있는 상황 속에서 팀까지 힘드니 괴로웠지만 결국 내 마음을 위로해주는건 사우스햄튼밖에 없었다...

 

때로는 가족이 위로가 되지만 때로는 가족이란 존재가 괴롭힌다. 혈연이라는 이유로 절연하지도 못한다. 패륜아 소리는 듣기 싫으니 결국 내가 짊어지고 가야 하는 상황이 되었다. 사람은 참 이기적인 동물이다. 부모님이 아플때 나는 내가 외벌이를 하는 수준으로 집안 생계를 챙겼고 간병까지 했지만 막상 내가 아픈 상황이 오니 누구 하나 나를 위로해주는 사람도 없고 공감해주는 사람도 없었다. 남는건 나 하나밖에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올해는 내가 인스타그램 게정에 많이 몰두한 것 같다. 사우스햄튼 관련 글을 올릴 때마다 공감이나 댓글을 보내주는 팬들이 고마웠다. 차라리 그런 식으로라도 현실도피를 하고, 사람대 사람으로 얘기를 나눈다는 사실이 나에겐 위로로 다가왔다. 

 

그리고 영국 대학원과 관련하여 얘기를 조금 하자면, 원래 나는 영국이 학비가 비싸서 이쪽으로는 생각이 없었다. 물가도 비싸고 집세도 비싸서 내 예산으로 커버가 되지 않을것 같았다. 스위스나 독일처럼 학비가 저렴한 곳으로 가는게 내 목표였지만 축구를 자주 보다보니 영국에 관심이 가게 되었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서 영국 석사가 1년이라는 것이 매력적으로 다가왔고, 등록금이나 학비, 집세 등등을 고려했을 때 다른 곳 2년을 다니나 영국 1년을 다니나 그게 그거였다. 애초에 소튼이 아니었다면 영국 대학원은 아예 생각도 하지 않았을 것이다. 

 

공교롭게도 독일이나 스위스 대학원은 전부 떨어졌는데 영국만 3곳을 붙었다. 어쩌면 이런게 다 인연인 것일 수도...? 올해 막판 유학을 가기 전에 CT 촬영을 한 결과가 너무 안좋게 나와서 최종적으로 1년 디퍼(연기)를 하게 되었다. 나는 그게 너무 괴로웠다. 솔직히 나도 내가 올해 영국을 가게 된다면 몸상태가 급격하게 악화될 수 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었지만 집에 있는게 너무 싫고, 이제 나도 나이가 있어서 하루빨리 학위를 따서 자리를 잡고 싶은 마음이 더 크게 들었다. 그래서 무리를 해서라도 무조건 9월 초에 영국으로 나가려고 했다. 최종적으로 CT 결과를 확인한 후 한국에 남아서 추가적으로 더 치료를 하는게 맞다는 결론을 내리게 되었다. 사실, 이전에 뼈스캔을 했을 때는 영상의학과에서 별다른 이상이 없다고 나왔기 때문에 별 문제가 없는 것인줄 알았으나 CT는 판독지에 말이 주렁주렁 달려 있을 정도로 척추쪽에 이미 병이 진행이 되고 있었다. 

 

그 과정까지 너무 우울했고, 처음으로 이렇게 사는게 의미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 한켠으로는 휴미라든 코센틱스든 비싼 고가의 약제를 쓰면 이제 더 나은 삶을 살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그런 고가의 주사제를 사용하기 시작하면 거의 평생을 맞아야 한다는데 약에 의존하면서 그렇게 사는 인생이 과연 의미가 있는 것인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 감독님은 강직성 척추염을 앓고 있는 나처럼 궤양성 대장염이라는 자가면역질환을 앓고 있다. 크론병, 궤양성 대장염, 강직성 척추염 등은 다 비슷비슷한 질환이다. 세부적으로는 다르긴 하지만 모두 자가면역질환이며, 장에 문제가 생기거나 관절에 문제가 생긴다는 것이 동일하다. 세 병이 겹치는 약제도 존재한다. 러셀 마틴은 스스로 비건임을 밝혔는데 아마 궤대때문에 비건이 된 것 같다. 그는 축구 선수를 성공적으로 마쳤고 지금은 사우스햄튼 감독을 하고 있다. 그의 축구 스타일에 대해서 아직 팬들사이에 말은 많지만, 나는 마틴을 보면서 스스로 위안을 삼았다. 그 사람은 몸을 쓰는 직업이니 나보다 더 힘들었지 않았을까 하고... 물론, 내가 마틴의 병이 얼마나 심각한 중증인지는 알지 못하지만 이러한 희귀질환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 극심한 피로와 체력저하를 느끼기 때문에 축구선수를 직업으로 갖는다는 것은 엄청난 노력이 있었을 것이다. 

 

그래, 우리 감독님도 이렇게 성공적으로 잘 버티고, 잘 해내고 있는데 나도 한 번 해봐야지. 참, 나처럼 축구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을까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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