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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스햄튼FC 소식/번역기사

랄프 하센휘틀의 축구 인생사 - 잉골슈타드 1부 승격과 RB라이프치히 시절 랑닉과의 갈등

by 윤인츠 2021. 6. 21.

2020.07.21 By Carl Anka/원문보기(디 애슬레틱)

DAZN의 텔레비전 전문가이자 잉골슈타트의 유소년 코치인 랄프 귀네쉬는 "랄프 하센휘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라고 묻는다.

2013년 10월 귀네쉬가 하센휘틀을 처음 만났을 때, 그는 경험이 풍부한 하부 리그 수비수로, 잉골슈타트가 분데스리가2 강등권을 피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그가 당신이 얼마나 달리고 얼마나 많이 스프린트를 하는지 자세히 볼 것이라는 것뿐이었습니다."라고 그가 말했다. "그는 또한 체력적인 강도에 중점을 두었습니다. 약 30세가 된 풀백으로서 이런 높은 수준의 플레이를 한 경험이 있었습니다. 제가 어떻게 말할까요? 달리기는 저의 가장 큰 강점은 아니었습니다. 저는 게임에서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한 사람이 아니라 올바른 위치에서 노력하려는 선수였습니다."

"우리의 첫 만남은 라커룸에서였습니다. 그는 저에게 물었어요: '랄프, 왜 그렇게 적게 뛰는지 말해줄 수 있어요?' 저는 마치.. 음..OK. 새 코치가 저와의 첫 대화에서 제가 왜 그렇게 적게 뛰는지 물어볼 것 같았어요. 그래서 저는 '중요한 상황에서 제가 없을거라고 생각하세요?'라고 말했죠. 그러자 그는 '아니, 아니, 모든게 괜찮아. 너만 잘한다면, 난 괜찮아. 나는 똑같은 스타일인 벤자민 허브너를 지도한 적도 있었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다양한 선수들을 다룰 줄 알아요. 저처럼 자신만의 플레이 스타일을 가진 선수들이 있는데, 그는 저를 바꾸려고 하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이것이 그의 플레이 방식이기 때문이죠. 그는 이렇게 말했어요: '이 선수가 내 플레이에 유용한가? 그렇지 않은가? 만약 그렇다면, 그는 자신이 원하는대로 플레이 할 수 있고, 그렇지 않으면 벤치에 있을 것이다.'

하센휘틀의 부임 후 첫 경기에서 벤치에 있지 않았던 한 사람은 바로 하센휘틀이었다.

귀네쉬는 말했다. "우리는 일요일에 VfL 보훔과 경기가 있었어요. 그는 목요일인지 금요일인지 감독으로 발표가 났었죠. 그는 경기 전에 선수들이 집중해야 하기 때문에 가까이 있고 싶지 않다고 말했어요. 그는 경기 후에 경기장에 있을거라고도 했죠. 그래서 하센휘틀이 공식적으로 지휘했던 첫 경기에서, 그는 벤치에 없었어요. 그는 경기장에 있었고 그의 보조코치가 벤치에 있었죠."

축구 저널리스트 린드 터트에 따르면, 잉골슈타트는 독일에서 축구 팬들 사이에 독특한 명성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2004년 ESV 잉골슈타트와 MTV 잉골슈타트의 합병으로 탄생한 젊은 바바리안 클럽에 대해 그가 설명했다. "아우디가 클럽의 20%를 소유하고 있고 원칙적으로 후원자이지만 그들은 여전히 50+1 소유권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팀으로서 그들은 꽤나 기력이 없는 팀이었지만, 독일의 전통적인 클럽으로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잉골슈타트는 퓨마의 뉘른베르크, 폭스바겐의 볼프스부르크처럼 아우디 타운이라는 것을 고려해야 합니다. 대부분의 시즌을 저기압으로 보낸다고 할 수 있지만 하센휘틀은 매우 좋지 않은 시점에서 인계를 받아 큰 성공을 거둔 그들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잉골슈타트는 첫 9경기를 7패 1무 1승을 거두어서 13-14시즌 초반 분데스리가 2부 리그 최하위를 기록했다. 알렌에서처럼 하센휘틀의 리빌딩은 점진적으로 이루어졌지만 곧 포괄적이게 되었다. 리버풀의 조엘의 형제인 마빈 마팁과 함께 잉골슈타트에서 하센휘틀의 주장으로 활약한 귀네쉬는 말했다. "그가 가장 먼저 개선하고자 했던 것은 우리가 실점한 많은 골들을 줄여나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매우 깊은 곳에 위치해있었습니다. 4-2-3-1 형태로 경기를 했었다가 이것을 몇 주 후에는 4-4-2 또는 4-4-3 형태로 바꿨습니다. 그러나 초점은 컴팩트하게 유지하는 것이었고 첫 몇 주 동안은 수비적인 자세를 취하는 것이었습니다. (하센휘틀이 먼저 수비를 고치는 방식) 경기할때 스트라이커였던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처음에 그는 마빈과 저에게 코너킥과 프리킥을 어떻게 하고 싶은지 물었습니다: '사람을 마킹하고 싶니? 아니면 특정 공간을 차지하고 있기를 원하니?' 우리는 처음에 맨마킹을 하길 원했지만 몇 주 후에 그는 우리가 프리한 공간을 사용해서 공을 얻는 방식으로 바꿨으면 좋겠다고 말했습니다."

"저는 그가 잉골슈타트에서 이런 극적인 효과를 거둔 것이 우연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라고 린드 터트가 덧붙였다. "그는 클럽의 큰 개성이었고, 그런 면에서 원천적인 힘이 있었고, 좋은 아이디어와 훌륭한 선수 그룹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곧 9승 10무 6패가 이어졌고, 하센휘틀은 앙골슈타트와 함께 자신의 첫 시즌을 10위로 마쳤다. 그 후 하센휘틀이 팀을 분데스리가 2부 리그로 이끌면서 매슈 레키(현재 헤르타 베를린), 파스칼 그로스(현 브라이튼), 벤자민 허브너(호펜하임), 대니 다 코스타(아인트라흐트 프랑크루프트의 핵심 인물)들이 함께 성장하였다.

"그는 자유롭게 흘러가는 축구를 구사하기 보다는 가진 자원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관건이었습니다."라고 린드 터트가 말했다. "그는 선수들을 그들의 요소의 합 이상으로 끌어 올렸습니다."

귀네쉬가 말했다. "그는 축구와 코칭면에서 놀랄정도로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팀 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에 대한 그의 느낌말입니다. 예를들어, 호텔에서 경기장으로 차를 몰고 가기 전에, 그는 동기부여를 주는 연설을 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경기전 마지막 팀 미팅에서, 누가 경기를 할지 말할 때 그렇게 긴 미팅을 가지진 않습니다. 길면 최대 15분 정도죠. 하지만 여러분이 이 미팅을 떠날 때, 문이 잠겨있는지 상관 없이 문을 통과하면 매우 의욕적이게 될겁니다!"

"그는 정말로 어떻게 선수들을 휘어잡아야 할지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말하죠. '이것이 방향이다, 가자' 그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입니다. 그가 원하는 곳이면 어디든지 따라갔습니다. 그가 말하는 것을 항상 믿었고, 그도 이것을 믿는다고 느꼈습니다. 전 첫날부터 그를 믿었습니다. 그는 저에게 많은 자신감을 주었습니다. 그가 당신의 코치라는걸 알게되면 여러분은 기분이 좋을겁니다."

"크리스마스 파티는 좋았지만, 프로모션 파티는 훨씬 더 좋았습니다." 귀네쉬가 농담을 했다. "그것은 아주 큰 파티였습니다. 제가 랄프 휘센휘틀이 춤추는 것을 본 것은 처음이었습니다. 그가 춤추지 않고 축구를 하면서 경력을 쌓아서 다행이었습니다."

잉골슈타트 우승 직후인 2015년 5월, 린드 터트가 BT 스포츠의 유럽 축구 쇼의 일원으로 하센휘틀과 인터뷰를 가졌었다. 오스트리아인은 "신선하고, 공격적이며, 성장하는 팀으로 우리를 기다리는 거물들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라고 말하며 그의 얼굴에 미소가 드러났다. "저는 우리가 정말 좋은 성적을 낼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잉골슈타트는 하센휘틀이 분데스리가 데뷔 시즌 기대치를 깼을 뿐만 아니라 좋은 성적을 내겠다고 약속한 것을 이루어냈다.

벤치 뒤에 숨어서 화제가 되었다. 그들은 득점을 해서 승리했다. 3개월 후, 바이에른 뮌헨이 잉골슈타트를 2-0으로 이긴 후, 펩과르디올라 감독은 "오늘 우리는 이번 시즌 우리가 지금까지 싸워온 최고의 팀과 마주쳤습니다."라고 말했다.

이 축구는 리그 골의 60%가 파스칼 그로스의 세트피스로 나오는 등 다소 실용적이었지만, 꾸준한 비율로 승점을 얻어냈다. 첫 시즌에 상위권을 달렸고, 고작 12년밖에 안된 축구 클럽이었던 잉골슈타트는 리그 순위를 11위로 마쳤다. 우리가 볼 수 있듯이, 올해 하센휘틀이 사우스햄튼의 레이더망에 처음 등장한 해이기도 했다.

하센휘틀은 다시 강등권을 희롱하는 기대치 이상의 성과를 냈지만 예산 제약으로 인해 자신이 더 많이 할 수 있는 일들에 한계를 느껴 다시 사임을 선택했다. 그해 봄, 잉골슈타트와 재계약하지 않겠다고 결정하면서, 하센휘틀은 클럽의 마지막 홈경기로 2016년 5월 7일 펩 과르디올라의 바이에른 뮌헨과 맞붙게 되었다.

잉골슈타트 팬들은 바이에른 뮌헨이 2-1로 승리하면서 분데스리가 우승을 확정짓자 관중석에서 'Danke Ralph(고맙습니다, 랄프)' 현수막을 흔들었다. 경기에서 눈물을 참고 있던 하센휘틀은 경기 후 가진 기자회견장에서 눈물을 흘리며 무녀져 내렸다. 하센휘틀은 그가 그토록 많은 것을 이루어낸 구단에 대해 격한 감정에 휩싸였다.


RB라이프치히에서 하센휘틀은 그의 작업을 위해서 그의 일부분을 잘라냈다. 라히프치히는 분데스리가 2부 리그에서 2위를 한 후 막 1부 리그로 승격되었고, 그들의 감독이었던 랄프 랑닉은 위로 올라가 단장일을 맡기로 결정했다. 그의 자리에는 겉보기에 비슷해 보이는 하센휘틀이 임명되었다.

"앙골슈트트가 플라스틱 클럽이라고 한다면, 그들은 친환경적이고 생분해가 가능한 플라스틱 종류라고 할 수 있습니다."라고 린드 터트가 소규모 클럽인 앙골슈타트에서 라이프치히로 도약한 것을 두고서 농담을 했다. 라이프치히는 레드불과의 상업적 구조와 관계로 인해 독일 축구에서 가장 싫어하는 축구팀 중 하나이다.

"또한 단장인 랄프 랑닉이 있는데... 어떻게 그를 표현하자면.. 매우 까다로운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랑닉은 슈투트가르트, 하노버, 샬케의 전 감독으로서 1998년 늦은 밤에 방영된 분데스리가 하이라이트 쇼에 출연한 후 "Fussball Professor"라는 별명이 생겼다. 독일 축구에서 카운터-압박 축구의 옹호자 중 한 명이었던 랑닉은 오랫동안 적극적이고 에너지가 넘치는 축구에 대한 자신의 믿음을 강조해왔다.

모든 레드불 축구팀이 공을 잃은지 5초만에 공을 되찾으려고 하는 것은 랑닉의 관리 하에서 생긴 것이다. 랑닉으로부터 많은 축구 감독들은 공을 따내서 10초안에 골을 넣는 것이 최고의 득점 방법이라고 믿고 있다. 그는 현대 독일 축구 역사상 가장 영향력이 있는 인물 중 한 명이며, 활력이 아주 뛰어난 사람들 중 한 명이다.

이러한 믿음으로 인해 하센휘틀은 2016년 라이프치히에 완벽하게 적합하게 되었고, 그해 여름 오스트리아인은 대니 롤과 함께 라이프치히를 분데스리가의 주축으로 만들기 위해 열렬히 노력했다. 현재 바이에른 뮌헨의 한지 플릭 감독의 수석코치로 있는 롤처럼 하센휘틀과 가까운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은 축구계에 아무도 없다. 디 애슬레틱은 바이에른에서 선수들이 훈련에서 그의 압박 세션이 이번 시즌 팀이 발전한 원인이라고 믿고 있다.

"라히프치히에 도착하자마자, 랄프는 모든 코칭 팀원들이 각 자의 분야에 참여할 수 있도록 빠르게 준비했습니다."라고 롤이 말했다.

"함께 일하면서 랄프는 책임을 위임하는 방법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라이프치히에서 많은 훈련에서 나와 졸트 로우를 믿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스포츠 심리학자인 샤샤렌스의 조언을 들었습니다. 가능한 경기 계획과 라인업에 대해서 코치진과 상의하면서 최선의 결정을 내렸습니다."

하센휘틀의 라이프치히는 그들의 가치를 깎아내리는 사람들을 경기장에서 떼어놓았을지도 모르지만, 그 위에서, 그들은 16-17시즌에 13경기라는 승격팀 중에 가장 길게 무해 팽진을 하는 돌풍을 일으켰다. 에밀 포르스베리, 나비 케이타, 티모 베르너와 같은 선수들이 상대 팀을 날려보냈다. 하센휘틀의 라이프치히는 4-2-2-2 형태로 경기를 치렀다. 경기장에서 고강도 압박을 펼치면서 양풀백을 폭발적으로 위로 올리는 전술로 바이에른 뮌헨에 이은 분데스리가 2위로 그의 팀이 포효하게 되었다.

"이제 우리는 그들이 좋은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에는 그들이 분데스리가에서 증명되지 않았었습니다."라고 린드 퍼트가 설명했다.

하센휘틀의 라이프치히 첫 시즌 후 비디오 분석가에서 코치로 승진한 대니 롤은 "케이타나 베르너와 같은 선수들이 어떻게 발전하는지를 보면서 젊은 팀과 매일 같이 일해서 즐거웠습니다."라고 말했다.

"무엇보다 이를 위해서는 높은 수준의 훈련이 필요하며, 선수들을 다음 단계로 발전 시키기 위해서는 동행하고 지원할 수 있는 모든 분야의 전문가 코치진이 필요합니다."

하센휘틀은 2018년 풋볼 파라다이스와의 인터뷰에서 "10초도 안돼서 공을 잡아내고 빠르게 전환하여 전진하는 것이 목표였습니다."고 설명했다.

"물론, 이것은 우리가 어디에서 공을 따내느냐, 가능성이 많으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는 첫 시즌에 이런 방식으로 많은 골을 넣었습니다. 초반에 빨리 하고 고강도 압박을 펼쳤죠. 챔피언스리그 진출 획득, 분데스리가 첫해에 리그 2위를 한 것은 우리에게 분명 특별한 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분데스리가에서 도르트문트와 바이에른, 유로파리그에서 나폴리를 상대로 승리한 것도 역시 매우 특별했습니다."라고 롤이 말했다.

하센휘틀의 라이프치히에서의 두번째 시즌은 덜 성공적이었는데, 챔피언스리그 진출로 인한 추가 업무량과 랑닉과의 마찰로 인하여 17-18시즌에 팀이 6위로 떨어졌다.

자신의 첫 챔피언스리그 조별 경기에서 그는 자신이 이런 스타일의 감독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 전에 스마트한 전술을 위해서 평상시에 쓰던 자신의 전술을 버렸다. 랑닉을 위해 그가 제공했던 엄격한 접근 방식에서 변화하고 있었다. 그는 일주일에 두 경기를 하는 것에 대처하기 위해서 랑닉으로부터 물려받은 4-2-2-2 포메이션을 적응 시켰고, 팀의 체력 수준을 보존하기 위해 소유권을 빼앗겼을 때 중앙에서 막아내는 수비를 펼치거나 넓은 공간에 공을 떨어뜨려 상대팀 윙어들을 방해하는 것과 같은 변화를 일으켰다. 이러한 특징들은 오늘날 하센휘틀의 사우스햄튼에서 볼 수 있다.

"끝으로, 하센휘틀은 이러한 원칙들을 좀 완화하기를 원했는데 랑닉은 이에 찬성하지 않았습니다. 하센휘틀이 진화하길 원했다는 것을 여러분은 알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두 사람이 콩깍지 속의 완두콩인 줄 알았는데, 하센휘틀은 무언가를 개발하고 있었습니다."라고 린드 터트가 설명했다.

하센휘틀은 랑닉이 나겔스만을 새로운 감독으로 영입하려 한다는 열망을 알게되자 2018년 봄 라이프치히에 계약을 해지할 것을 요청했다. 이후 하센휘틀은 6개월간의 휴식기를 취하면서 "뭔가"를 개발하는 중이었고, 이때 사우스햄튼이 전화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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